삼위일체주일 (Trinity Sunday)

삼위일체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3-1647년) 2장 3절 하나님의 본체(本體)는 하나이시며 곧 동시에 삼위(三位)이시다. (요일 5:7; 마 3:16,17,28:19; 고후 13:13) ① 본체와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신 삼위의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시다. ② 성부는 아무에게서도 나시거나 나오시지 않으시고 (neither begotten nor proceeding),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셨고 (eternally begotten, 요1:14,18), 성령은 성부와… Continue reading

성령강림주일 (Pentecost Sunday)

성령강림주일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10가지 성령강림주일은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다. 성령강림주일은 부활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다. 성령강림 사건은 사도행전2:1-13에 기록되어 있다. 성령강림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10일 후에 일어났다. 성령강림을 보통 “교회의 탄생일”로 여겨진다. 성령강림 사건은 “진리의 영이시고,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요16:5-15)의 실현이다. 성령강림 사건으로… Continue reading

테네브레 예배 (흑암의 예배)

테네브레 (Tenebrae) 라틴어 테네브레는 “흑암”,“그늘”을 뜻한다. 성금요일에 드리는 테네브레 예배는 경건함과 묵상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기념한다. 이 예배는 예수님의 장례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갈보리 십자가를 지신 그의 희생을 찬미한다. 여기서 흑암은 경이로운 어둠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죽으시던 그 날, 정오부터 3시까지 임한 십자가… Continue reading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종려주일(Palm Sunday)은 십자가 수난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공식 입성(入城)을 축하하는 날로, 사순절의 6번째 주일이며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첫날이기도 하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 자신의 겸손하신 모습을 보이셨다. 고난주간의 첫날이 종려주일로 불리는 것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당시 메시야로 개선하는 왕처럼 오시는 예수를 환영하는 뜻으로… Continue reading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은 사순절의 첫 날입니다. 이 날에는 이마에 십자가 모양으로 재를 바르는 의식(imposition of ashes)을 합니다. 종종 성경에서 재를 바르는 것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욥은 “티끌과 잿더미 가운데 회개(욥42:6)”한다고 고백합니다. 다니엘 역시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하나님께 기도”(단9:3)하였습니다. 재를 뒤집어쓰는 것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비참해진 것을 회개한다는 의미를 형상화한… Continue reading

사순절에 떠나는 신앙 여정

◈ 사순절이란? 사순절(Lent, Quadragesima)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Lent의 어원은 만물의 소생을 뜻하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인류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요3:16)을 의미한다. 사순절은 재를 이마에 바르며 죄를 회개하는 재의 수요일로 시작되며, 부활절(Easter) 전 40일(사순,四旬, 6번의 주일은 세지 않는다) 동안 지킨다. 이날에는 금식 등의 자기 절제와 회개를 한다. ‘유월절'(무교절) 기간에 있었던… Continue reading

성령님과 동행하는 인생은 아름답다. (행8:9-20)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인간을 두 종류로 분류합니다. 첫째, 소유지향적인 인간(having mode)입니다. 이들은 물질적 가치를 인생의 목표로 삼습니다. 세속적인 성공이 능력이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탐욕에 빠집니다. 둘째는 존재지향적인 인간(being mode)입니다. 이들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합니다. 세속적 부, 명예, 권력보다 정의, 사랑, 진실 같은 것을 추구합니다. 여기에는 자연스럽게… Continue reading

고난의 향한 부르심 (막1:16-20)

인생은 누구에게나 고난의 연속입니다. 믿음과 무관하게 고난은 존재합니다. 과연 신자에게 고난은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사순절(Lent)을 지내면서 신자는 “고난의 신비”를 묵상해야 합니다. 마가복음에는 고난의 신비가 깊이 묻어 있습니다. 마가의 복음서는 두 가지 강조점이 있습니다. 첫째, 고난 받는 종이 참된 메시야임을 밝힙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고난의 종, 예수님이 참된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둘째, 참된… Continue reading

하나님은 경험보다 크시다

구약성경에는 잠언, 전도서, 욥기와 같은 지혜서(wisdom book)가 있다. 지혜서에는 “어떻게 가치 있는 인생을 살 것인가?”의 해답이 들어있다. 인간은 본능에만 충실하게 살 수 없고, 가치를 추구한다. 인간에게 무가치는 허무감, 회의감으로 연결된다. 지혜서의 결론적 진술은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살라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의 지혜로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이론으로는 어느… Continue reading

염려없는 인생이 있다

셰익스피어는 “근심은 생명의 적이다”라고 했습니다. 염려와 걱정 속에 사는 것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모든 인생의 어려움이 여기서 나옵니다. 성경은 근심의 원인을 단 한 가지로 지목합니다. 바로 인간의 죄성입니다. 범죄이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두려움을 느낍니다(창3:10). 첫 살인자인 가인은 아벨을 죽인 후, 자신에게 지어진 죄벌의 무거움에 고통을 느낍니다(창4:13). 근심은 치명적입니다. “마음의… Continue reading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신앙으로 살라 [행4:16-19]

실존주의 심리학자인 롤로 메이(Rollo May)는 현대인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병이 불안과 공허감이라고 지목합니다. 불안은 마음이 평안하지 않고, 무언가에 압박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공허감은 목표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세상은 항상 우리를 불안감과 공허감으로 몰아갑니다.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산헤드린 공회원 앞에서 선포한 설교입니다. 사도들의 메시지는 확신과 능력이 있었습니다.그들의 메시지의 중심은… Continue reading

하나님께 외면 당한다고 느껴질때 [시77:9-12]

고난은 하나님과 소원한 관계에서 오기도 하지만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 중에도 성큼 다가 옵니다. 기도가 속히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는 낙심하게 되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도 나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외면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버려짐의 외로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영적인 조급증과 낙심은 기도에 대한 회의로 발전됩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이것을 경계하시며… Continue reading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일하신다 [히11:23-26]

모세는 영광스런 믿음의 지도자인 동시에 고난의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고난의 관점에서 모세의 인생을 해석합니다.  (히11:25-26)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그는 고난의 사람이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고난의 가치를 바로 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 Continue reading

다름의 영성으로 살라

고수에게는 비책(hidden card) 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소유하지 않은 탁월한 해결책입니다. 이것은 영적 거인들에게도 동일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은 고난을 선으로 바꾸신다’는 역사인식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고백을 통해 항상 좋은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울 사도가 소유한 신앙의 핵심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복음입니다. 첫째, 참된 복음 하나님의 방법은 ‘다르다’는…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