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의 영성으로 살라

고수에게는 비책(hidden card) 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소유하지 않은 탁월한 해결책입니다. 이것은 영적 거인들에게도 동일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은 고난을 선으로 바꾸신다’는 역사인식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고백을 통해 항상 좋은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울 사도가 소유한 신앙의 핵심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복음입니다.

첫째, 참된 복음 하나님의 방법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피조물과는 다릅니다. 한나는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다’고 기도합니다. 거룩하시다는 표현은 세상과 구별됨을 말합니다. 즉 세속의 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지존자이십니다. ‘다름 (difference)’ 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은 복음 사건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복음 사건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게서 죽게 하시고, 다시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가 부활의 소망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에서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영광으로 인도하십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고난을 변장된 축복’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넘어짐의 자리에서 일어남을 경험케 하십니다.

6-9절에서, 바울은 복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복음사건에 대한 묵상은 ‘다름의 영성’으로 살게합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거룩은 ‘어떤 느낌이 아니다. 죄로부터 구별되는것, 세상과 다르게 사는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세속적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입는것을 염려하여 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다름의 영성으로 사는것입니까? 둘째, 다름의 영성은 세속의 방식을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10절에서 바울은 세가지의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내가 사람을 좋게하랴’라는 말은 세속의 방식을 지칭합니다. ‘좋게한다’는 말은 ‘페이쏘’라는 단어입니다. 설득한다는 뜻입니다. 당시에 지성과 논리로 타인을 설득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입니다. 설득을 잘하면 능력자입니다. 현대의 능력자는 명예, 물질, 권력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이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좋게하랴’라고 말합니다. 원문에 가까이 해석하면 ‘하나님을 설득할 것인가?’ 입니다. 이것은 종교의 방식입니다. 이방종교나 그리스-로마 종교는 신을 설득해서 자가 유익을 추구합니다. 반면에 기독신앙은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얻어내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거절하셔도 ‘그래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의 방식입니다. 신앙은 ‘믿는다’라는 뜻의 ‘피스튜오’입니다. 이 말은 ‘설득하다’라는 말의 수동형과 관련됩니다. 설득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압도되어지는 것입니다. 신자가 세속의 방식, 종교의 방식을 배척한수있는 유일한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는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최후의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은 순종의 훈련입니다. 그들은 구름을 따라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구름이 머물고 있으면 움직일 때까지 거기에 정착했습니다. 이동하면 바로 따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다름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다름의 영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때, 빛이 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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