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향한 부르심 (막1:16-20)

인생은 누구에게나 고난의 연속입니다. 믿음과 무관하게 고난은 존재합니다. 과연 신자에게 고난은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사순절(Lent)을 지내면서 신자는 “고난의 신비”를 묵상해야 합니다. 마가복음에는 고난의 신비가 깊이 묻어 있습니다. 마가의 복음서는 두 가지 강조점이 있습니다. 첫째, 고난 받는 종이 참된 메시야임을 밝힙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고난의 종, 예수님이 참된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둘째, 참된 메시야를 따르는 제자의 삶은 고난을 신비를 묵상하고, 실천하는 삶이라고 가르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광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또한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을 때, 아버지와 다른 동료들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아갑니다. 이 간단한 스토리를 의사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더욱 자세히 기록합니다 (눅5장). 그들은 밤새 그물을 내렸지만 물고기를 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명하셨을 때, 그대로 순종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압도된 것입니다. 어부로써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고난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말씀에 압도되어지는 기회가 됩니다. 그들은 이 신비로운 체험을 한 후, 신앙의 결단을 내립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나는 죄인입니다” (눅5:8) 이것이 첫 제자들이 고난을 향해 부르심을 받는 광경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매이게 됩니다. 이 매여짐에 신자의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매이는 것, 곧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 그것이 곧 고난의 신비로 가는 관문입니다.

제자들이 말씀에 매이게 되었을 때, 그들은 제자의 삶으로 나아갑니다. 어부에게 그물을 버려두는 것은 곧 포기입니다. 권리를 이양하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hnhӧffer)는 값싼 은혜(cheap grace)를 거부합니다. 그저 믿는다는 신앙고백 차원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진정한 제자도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내가 당신을 믿겠다는 신앙고백 대신에 행동으로 순종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고귀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전에 가치 두었던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선순위 두는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의 부르심 가운데 나가면 우리의 일생이 행복하고, 감사의 제목이 풍성한 나날이 되겠지요?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그 가운데 고통과 아픔, 좌절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뜻대로 해서 겪는 고난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오는 고난은 그 차원이 다릅니다.고난의 부르심에 순종해도 당장에 큰 변화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지막에 결판이 납니다. 인생의 가치는 마지막에 결론이 지어집니다.전도자는 교훈합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전11:9)”. 여기에 고난의 신비가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영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잠시의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제자의 삶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장차 해와 같이 빛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세상의 원리와갈등하고, 신앙적 고민을 하는 것은 고난의 신비의 백미입니다. 이 땅에서의 참된 제자로써의 고난은 하늘의 상급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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