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영광스런 믿음의 지도자인 동시에 고난의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고난의 관점에서 모세의 인생을 해석합니다. (히11:25-26)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그는 고난의 사람이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고난의 가치를 바로 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고난의 심오한 가치에 대해서 선포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고난은 최고의 능력이 됩니다. 민족의 지도자인 모세의 인생은 120년입니다. 40년은 바로 공주의 아들로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이집트의 문명과 학식이 그의지성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살인자가 되어, 도망자로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냈습니다. 여기서 그는 철저한 인성교육과 영성훈련을 받습니다.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성과 인성과 영성이 균형되게 하신 후에 그를 사용 하십니다. 모세의 인생 여정에 대해서 D.L 무디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모세가 왕궁에 있을 때, 자신이 무언가 되는 것(something)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에서 철저하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nothing)을 자각합니다. 그런 실패의 사람, 모세가 하나님의 전능의 손에 붙잡히게 되었을때, 모든 것을 할수 있는 (everything) 능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고백하기를 “(고후12:10) 그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무(nothing)에서 유(something) 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하나님의 오른손에 붙잡혀진 별들로 사용하십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것을 할 수 있느니라.
둘째, 고난은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26절에서 모세의 신앙을 가리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말은 그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 하나님의 비전을 확실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표현한 말입니다. 당겔로 (D’Angelo)라는 신학자의 본문은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은 사탄의 억압속에서 자기 백성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실천한 것이며, 모세가 애굽사람을 쳐죽인 것은 애굽의 압제에서 자기 히브리 사람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다.” 두 사랑의 크기와 가치를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구원의 관점에서 볼 때, 모세의 모습은 하나님의 비전에 대한 열망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한 모세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모세의 삶 속에서 진정으로 요구하고 계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큰 일을 바라보고, 자신의 권리를 표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 공주의 기득권, 권력을 포기토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잠시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제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으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방식, 포기의 방식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놓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 (nothing)이 될때 하나님의 비전은 실현되고, 그안에서 모든 것 (everything) 이 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