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인간을 두 종류로 분류합니다. 첫째, 소유지향적인 인간(having mode)입니다. 이들은 물질적 가치를 인생의 목표로 삼습니다. 세속적인 성공이 능력이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탐욕에 빠집니다. 둘째는 존재지향적인 인간(being mode)입니다. 이들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합니다. 세속적 부, 명예, 권력보다 정의, 사랑, 진실 같은 것을 추구합니다. 여기에는 자연스럽게 헌신과 희생이 자리잡습니다. 그는 존재지향적인 삶이 높은 수준의 삶이라고 단정합니다. 그의 논조는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한 전도자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5:10)
그렇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최고의 가치의 삶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준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이 말씀에 대해서 누가는 더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예수님은 신앙인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영적 가치를 성령님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을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가르치십니다.
왜 성령님이 가장 중요한 영적 가치입니까? 본문에는 마술사 시몬이 등장합니다. 그는 사마리아 지역의 교주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빌립 집사의 복음 메시지를 듣고 회심합니다. 13절에 보면 시몬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습니다. 세례도 받습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빌립을 추종합니다. 그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습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압니다. 그래서 요한과 베드로 사도들에게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흥정합니다. 사도들은 책망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하느냐? 너는 돈과 함께 망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마술사 시몬에게는 신앙의 외형적 형식이 있습니다. 신앙고백과 세례받음과 빌립을 따르는 신앙적 열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동행이 없습니다. 성령님 없는 자기 열심 뿐입니다. 13절에 전심으로 따랐다는 말의 원어는 합성어로 되어 있습니다. 앞을 향하여 흔들림없이 즉각적으로 따랐다는 말입니다. 이 즉각적인 순종은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을 부르신 광경을 생각나게 만듭니다. 마가복음 1장의 첫 제자들은 성령에 압도되어 예수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에 지체없이 순종합니다. 두 사건이 유사한 듯 하지만 첫 제자를 부르신 사건은 성령님의 함께하심의 사건입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왜 마술사 시몬의 신앙적 열심은 성령과 무관합니까? 그것은 성령을 돈으로 사고자 했던 것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여기서 돈이라는 원어는 물질, 일, 사업 등의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자신이 소유한 가치로 영원한 가치를 사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성직매매 simony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의 필수조건 성령의 선물을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선포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날마다 성령의 압도되어 회개하는 삶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나라에서도 빼앗기지 않는 귀한 열매입니다. 모두가 회개의 열매 가운데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